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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라도 봐서 다행이었던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

영화

by ji2n2z 2022. 7. 26.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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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담아두었지만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영화 하나를 시작하려면 꽤 많은 컨디션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나의 성향 탓도 있지만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크게 보도된 2002년은 내가 5학년 때였다. 당시는 기억나지 않고 나는 그 한참 후, 가톨릭에 이런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먼 옛날 이야기처럼 배웠다. 모태신앙인 우리집은 이 내용을 수면 위로 올리진 않았고 엄마는 원래 모든 집단에 그런 사람들이 한 두명쯤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나도 그 정도로 인지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난 후, 바뀌었다.

 

모든 집단에 이런 일 정도는 원래 있는 것이라는 말은 너무도 무책임한 말이었다. 이 문제가 겉잡을 수 없는 크기로 번진 데에도 바로 그 사고방식이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전체 신부의 6%, 즉 보스턴이라는 지역에서만 90명 가까이 될 것이라고 추정된다는 이 일은 이미 어느 집단에 있는 꼴통 정도로 해결될 수치가 아니었다. 13명이 되어야 그제야 기사거리가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기사거리가 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교회 자체를 고발해야하는 일이었다. 이 수치를 듣자마자 모두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게다가 피해자가 했던 말과 같이 믿음이 깨져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큰 일이었다. 이건 예사 집단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일탈 정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얼핏 듣게 되면 그 정도로 치부하게 되어버린다. 일단 불편한 것은 듣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 사람의 성미인데 심지어 이건 종교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로 큰 일이라면 당연히 누군가는 알지 않았을까 라는 무책임한 생각이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이것을 피해왔고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왔다. 내가 아는 종류의 문제는 충분히 상황을 인지하고 파헤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상황을 아주 표면적으로만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 문제는 그저 그런 것이 되어버린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실이 단지 종교인의 성추행이 아니었다.

 

이것을 짚어준 부분이 바로 마티 편집장이 '신부 개개인이 아니라 교회라는 체계 자체에 집중하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묵인하고 덮어버렸다는 사실인 것이다. 한 두번 그렇게 덮는 것을 돕던 변호사들도 점점 거대해지는 사건의 크기로 문제의식을 느껴 언론에 보도하지만 언론도 이에 주목하지 않아 버린다. 어떠한 면죄부가 생겨버리고 그로 인해 문제를 대처하지 않으면 그게 얼마나 눈덩이처럼 커져버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는 단지 가톨릭의 문제를 꼬집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회적 문제를 맞닥뜨렸을때 초반의 잘못된 판단들이 일을 얼마나 최악으로 이끌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게 거대해져버린 덩어리는 이제 그 파편에 맞을까봐
어느 누구도 처치하려고 하지 않는데 그걸 스포트라이트 팀이 해냈다.

 

워낙의 방대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다루다보니 영화에서는 그리 깊게 다루지 않았지만 이 취재를 하는 내내 스포트라이트 팀이 어떤 괴로움과 고통을 느꼈을지 짐작도 안될 것 같았다. 단지 취재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수많은 기간동안 묵혀있어 곪아 터져버린 피해자들의 상처와 묵혀있는 동안 더욱 더 냄새나게 썩어버린 그들의 더러운 모습들을 모두 필터링 없이 직면해야했으니. 그리고 어느 누구 하나도 이 사건과 자신의 사생활이 얽혀있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자신의 친구가 그 옛날 이 사건을 묵인한 장본인 혹은 피해자였거나, 할머니가 주 3회 꼬박 교회를 가는 독실한 신자이거나, 가해 신부가 자신의 집 인근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지만 비밀취재로 숨겨야하거나 등등 모두 저마다 자신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 많은 고통 속에서 그들은 기사를 완성했다. 그리고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부분들도 모두 의연하게 처리했다.

 


기자라는 것, 언론인이라는 것 최근에는 많이 하찮아졌다. 그래도 신방과를 나온 사람으로서 기레기라는 단어를 쓰고싶지는 않지만 또 어떤 상황을 보면서는 턱 끝까지 그 단어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내게 많이 값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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