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소리 저만 들리는거죠? 전화 받았을 때 뚜뚜하는 소리요. 그 소리가 자기 전에도 들려요.
- 수진 -
제가 왜 죄송하다고 해야돼요? 전 잘못한게 없잖아요.
- 수진 -
사실은 나도 혼자 밥 못먹어요. 혼자 잠도 못자고요. 혼자 담배도 못피고. 그냥 그런 척 하는거에요
- 진아 -
왜 일하면서 감정 섞고 진심섞어?
- 팀장 -
전 똑같이 하고 있는건데요. 팀장님이 제 사수일 때랑 똑같이 하고 있다고요.
- 진아 -
(팀장) 있잖아. 내가 요즘 들어서 생각한건데 우리가 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한거 아닌가 싶어. 그냥 설렁설렁 할 걸 그랬나
요즘 같은 세상엔 혼자가 편하다. 이건 콜센터 상담원 진아도 마찬가지.
근데 시답잖게 말을 걸어오던 옆집남자가 죽엇다는 소식 이후, 진아의 고요했던 일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무와도 말하고 싶지 않은 세상이다. 모든 것이 귀찮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 안되는 일 투성이다. 그래서 어떤 누구와도 교류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번씩 한다. 그런데 그럴 때가 있다. 문득 어떤 누군가가 자신의 진심을 말하거나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마치 정신이 깬듯 다시 한번 눈을 뜨게 된다. 그 순간은 나의 기억 속 어딘가에 박힌다. 그리고 모두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나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면 그 사람들이 모두 이해안되는 괴물이 아니라 단지 나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최대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안쓰러운 사람들로 보인다. 그럼 세상에 피하고 싶은 것은 없어진다.
TED에서 봤던 BRENE BROWN 교수의 <The power of vulnerability> 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있다. 그 옛날 아주 감명깊게 봤던 강연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니 완전히 내용을 까먹어버렸었다. 그런데 강연을 다시 들어보니 강연의 주제는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었다. 강연의 내용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두려움, 슬픔과 같은 취약성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술을 마시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것을 마비시키려고 하는데 감정을 선택적으로 마비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이 행동을 통해 우리는 기쁨, 사랑과 같은 감정들마저 잃게 된다. 그런 감정들을 잃게 되면 우리는 외롭고 괴로워져서 다시 취약성을 느끼게 되는데 그러면 다시 그것을 마비시키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그리고 그것은 악순환이 된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그렇게 자신을 마비시킨 사람이었다.
아무와도 말하고 싶지 않고 모든 것이 귀찮을 때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들과 단절해나가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단절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될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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