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3년 묵은 화장품 상자를 청소하는 것 같았어.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굳어버려서 선명해진 상자.
매일 아침, 만신창이가 된 내 어리석은 몸을 치장해주고 적당한 가면을 씌워주는 화장품들은
정말 고마운 존재들이면서 눈에 안 띄어.
채소, 커피, 약들은 그렇게도 유통기한 다 따져가며 철저하게 지키면서
얼굴에 바르는 그 중요한 화장품은 당연히도 무시한다는게 웃기지.
그러던 어느 날, 그냥 그런 날이야.
이상하게 화장품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싶어져.
이게 언제 이렇게 케케묵은 것처럼 먼지 쌓이고 더러워졌지?
그 어느 것보다 깨끗해야하는 것들이 왜 이런 상태가 되어있지?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그리고 그것들을 치워.
그냥 천천히, 내가 원래 하던 행동인 것처럼, 어떠한 의식인 것처럼
하나씩 닦고 정리해나가는거야.
그렇게 오래도록 묵혀두던 그 상자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거쳐지나갔어.
이 색깔이 맞을까, 저 쉐잎이 맞을까.
한참을 고민하며 샀던 그 많은 것들이 그 서랍에서 한 데 뒤엉켜있어.
재밌는 건, 판단이 빠르다는 거야.
그 많은 과거들이 모여있는 상자에서 아주 단호하게 몇 몇 개들을 집어들어
가차없이 휴지통에 버려.
어쩌면 그것들이 내게서 떨어져나간 건 이미 한참 예전이었던 것이지.
아니 분명히 그래.
복잡한 마음이 단 한가지로 귀결하는 기분이 들어.